방구석 소설가

(31)아주 특별한 사랑(L)

기억창고 주인장 2022. 2. 21. 22:35
728x90
반응형
SMALL

아주 특별한 사랑

 

(민준의 어린 시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


민준의 기억으로 그의 아버지는
그리 성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골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한마디로 가오잡기를 좋아하는 허풍이
좀 있는 사람이었는데,
농한기에는 사람들과 면 소재지에 있는
길다방에 가서 다방레지들과 떠들기도
하고 다방 안쪽에 있는 방에서
화투를 치면서 하루를 보내곤 했었다.

제삿날이던가, 집안에 일이 있는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지않는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어머니는 어린 민준을 길다방으로
보내곤 하셨다,


그때 본 길다방의 최양은 통굽의 아주 높은
슬리퍼를 신고 머리에는 천으로 된
머리띠를 하고 늘 껌을 씹으면서 민준의
아버지를 비롯한 나이든 어른들한테도,
교태를 섞어서 반말을 하곤 했다.
최 양이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슬리퍼를 벗는 모습이 슬리퍼를 벗기보다는
슬리퍼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만큼 슬리퍼의 굽이 높게 느껴졌고
어린 민준이 보기에 신을 신은 최 양의 모습
또한 버겁게 느껴졌었다.

“금방 간다 그래라~”
귀찮은 듯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
민준이 길다방에서 나오고서 한 시간
이상은 족히 지나서야,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는 바람에
늘, 엄마의 애를 태우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대충 싼 짐을
트럭에 싣고,우리 네 식구는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는 계속 차 안에서 담배만 피우셨고,
엄마는 간간히 한숨을 내 쉬었다.
“엄마 우리 서울로 이사 가는 거야?”
민준보다 네 살 어린 여동생 민정이가
신이 나서 말했지만,
민준은 그래도 눈치가 있어서
좋은 일로 이사하는 것이 아님을
분위기로 느끼고 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두 눈을 끔뻑이면서,
엄마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렇게 야반도주를 하듯이 대충 짐을 꾸려
고향을 떠나온 후,
민준네가 도착한 곳은 송파구와 성남시의
경계선에 있는 동네였는데,
주위는 논밭이 있고,
논밭 가운데 산 아래에 성냥갑처럼
학교가 서 있었다.
무슨 공업전문대라고 했는데,
민준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은 의례히
“너네들 공부 안 하면 저기 저 학교 가야 한다”
하면서 그 학교를 가리키곤 하셨다.

송파구와 경계선이지만 그 동네는
성남시 관할 지역에 있는 복정동이라고
했는데, 어른들은 그 동네를
복 우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민준에게 그 동네는 전혀 복이
나오는 우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암울한 기억 밖에는 없다.


집도 몇 채 안 되는 동네이기도 하지만,
민준이 사는 집은 벽돌을 대충 쌓아서
칸을 막고 방만 하나씩 있을 뿐 화장실을
여러 집이 같이 써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아침마다 화장실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곤 했다.
아버지는 사거리라고 부르는 동네 어귀에
새벽마다 나가서
건설 현장에 일일 작부로 일을
다니곤 하셨다.

아버지의 성실하지 못한 근성은
그때도 발휘되었는데,
말이 일을 다니는 것이지,
하루 일하고는 술 마시고
이틀은 일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주무시다 뒹굴다를 반복하셨다.
“이 눔의 세상”
뒹굴다 지치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면서
가끔 이런 말을 한마디씩 하곤 했다.


엄마는 그곳에서 가까운 가락동시장에
가서 이른 새벽부터 잡일을 하셨는데,
돌아온 엄마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엄마가 들고 오시는 검정 비닐봉지의
내용물로 그날 배추나 무 같은 야채를
다듬는 일을 하셨는지,
아니면 생선을 다듬거나 정리하는 일을
하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민준이 전학을 간 학교는 그 동네 산 밑에
위치한 아담한 초등학교인데,
병설 유치원이 있어서 민정이도 그곳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민정이는 늘 유치원이 끝나도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면서 오빠를 기다리곤 했다.
그런 민정이 걱정돼서 민준은 오후에 수업이
끝나고 노는 시간이 될 때마다
운동장으로 나가서 단 10분 동안이지만
민정이를 보고 별일이 없는지
동생을 보살피는 애늙은이 같은 아이였다.



그해 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그나마 일하기 싫어하는 아버지는 공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가 반짝 햇볕이 나서인지
뒤늦은 새벽에 어슬렁 나가는 아버지 때문에
아침에 선잠을 깬 민준은 민정이를 깨워서
이미 엄마가 나가시면서 차려 놓고 간
아침을 민정과 같이 먹고 학교로 갔다.

셋째 시간은 과학시간이었는데,
과학기구라고 해야 알코올램프와 비커와
온도계가 고작이었지만
아이들이랑 민준이 과학실에 옹기종기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모여 있을 때,
학교에서 일하는 키가 작은 누나가
민준을 불렀다.
소사라고 부르는 김양 누나를 따라
밖으로 나가니,
이모부가 학교 교무실 앞에서 서 계셨다.
“민준아~아버지가 많이 다치셨다.
민정이도 데리고 와라”
하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이모부가 타고 오신 택시는 민정이와
민준을 태우고
택시로 30분도 안 되는 거리의 병원
앞에 내려놓았다.

 

 

“민준아~이제 네 어깨가 무겁다,
맘 굳게 먹어야 한다”
이모부가 민준에게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민준의 아버지는 건물을 짓기
위해서 임시로 설치해 놓은 시설물에서
벽돌을 나르다가 비로 인해서 미끄러워진
시설물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떨어져서 즉사했다고 했다.
우는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고모들 사이에 민준은 멍하니
상황 정리가 안되기도 하고 실감이
안나기도 하고, 또 아버지가 이제 없다는
사실이 왜 중요한 건지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 해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어린 민준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아버지가 없으면 힘들다는
것보다는 고향을 야밤에 도망치듯 떠나와야
했던 이유가 바로 아버지의 노름 빛 때문
이었다는 사실이
민준에게는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달라진 것이
있긴 했다.
여기저기 위로금과,
또 건설회사에서 주는 위로금으로
민준네는 복정동 월세방을 졸업하고
가락동 근처에 있는 다가구 주택 반지하에
월세가 아닌 전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반지하 이기는 하지만 방도 두 개라서
민준에게는 자신의 방이 생겼고,
집안에 화장실과 보일러실을 갖춘 집 덕에
편리하기도 했을뿐더러, 거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부엌이라는 공간도 있는 그런 집이었다.

그 액수의 전셋돈이라면,
성남시로 들어가면,
더 좋은 집에서 살 수도 있었지만,
성남시가 아닌 송파구를 택한 이유는
어려움 속에서도 민준을 성남시보다는
송파구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보내고 싶은
민준의 엄마 정숙의 원대한 꿈 때문에
민준네 가족은 가락동을 선택했던 것이다.

728x90
반응형
LIST

'방구석 소설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33)아주 특별한 사랑(N)  (18) 2022.02.25
(32)아주 특별한 사랑(M)  (16) 2022.02.25
(30)아주 특별한 사랑(K)  (2) 2022.02.21
(29)아주 특별한 사랑(J)  (0) 2022.02.21
(28) 아주 특별한 사랑(I)  (0) 2022.02.21